설계의 셋째 단서, 질서
질서는 설계의 세 단서 가운데 셋째로, 무작위와 무엇이 다른지를 묻습니다. 그냥 있게 된 것이라면 흩어져 있어야 합니다. 질서를 재는 방법은 다음에 무엇이 올지 미리 말해 보는 것입니다. 말해 놓고 기다렸을 때 맞으면 그 자리에 무엇인가 있습니다. 이로써 보이지 않는 설계도를 재는 자가 완성되고, 네 세계를 걷는 걸음이 시작됩니다.
미리 말해 보면 압니다
앞에서 분해했던 시계를 다시 맞춰 놓겠습니다.
초침이 지금 여기 있습니다. 십 초 뒤에 어디 있을지 말해 보십시오. 말할 수 있습니다. 틀리지 않습니다. 내일 이맘때도, 다음 달 이맘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번에는 주사위를 던져 보겠습니다. 방금 육이 나왔습니다. 다음에 무엇이 나올지 말해 보십시오.
말할 수 없습니다.
두 물건이 다른 자리가 여기입니다. 하나는 다음을 미리 말할 수 있고 하나는 없습니다.
이것이 셋째 단서입니다. 무작위와 무엇이 다른가. 그리고 그것을 재는 가장 정확한 방법은, 다음에 무엇이 올지 미리 말해 보는 것입니다.
말해 놓고 기다립니다. 맞으면 그 자리에 무엇인가 있습니다. 틀리면 없거나, 아직 못 본 것입니다.
종이 위의 식이 백 년 뒤에 작동합니다
그런데 미리 말할 수 있다고 다 같은 것은 아닙니다.
파도가 밀려왔다 나갑니다. 다음 파도가 언제 올지 대강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되풀이입니다. 되풀이는 질서의 가장 낮은 자리입니다.
한 단 위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책상에 앉아 종이 위에 식을 하나 씁니다. 그 식이 가리키는 물건은 아직 세상에 없습니다. 실험한 것도 아니고 본 것도 아닙니다. 계산만 했습니다. 그런데 몇십 년 뒤에 누군가 그 식이 말한 것을 실제로 찾아냅니다. 그리고 다시 백 년 뒤에는 그것이 우리 주머니 안에서 작동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되풀이는 세계가 반복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다릅니다. 세계가 어떤 언어로 쓰여 있어서, 그 언어를 종이 위에서 먼저 읽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사람 머릿속의 셈과 바깥 세계가 같은 문법을 쓰고 있지 않으면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정직해야 합니다. 짚고 갈 것이 둘입니다.
하나. 우리는 맞은 것만 기억합니다. 종이 위에서 나온 식 가운데 세계와 맞아떨어진 것은 극히 일부입니다. 나머지는 버려졌고 아무도 기억하지 않습니다. 맞은 것만 세어 놓고 놀라는 것은 정직한 셈이 아닙니다.
둘. 사람은 없는 무늬도 만들어 냅니다. 구름에서 얼굴을 보고, 우연히 겹친 두 일에서 뜻을 읽습니다. 질서를 찾는 눈은 질서를 만들어 내는 눈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셋째 단서도 혼자서는 부족합니다. 세 단서가 함께 서야 하는 이유가 여기서 마지막으로 확인됩니다.
자기 인생만 무작위로 봅니다
이 단서도 사물에서는 쉽고 사람에서는 어렵습니다.
한 사람이 자기 인생을 이야기할 때 가장 자주 나오는 말이 하필입니다. 하필 그때 그 일이 있었고, 하필 그 사람을 만났고, 하필 내게 이런 일이 생겼다고 합니다. 하필이라는 말은 무작위라는 뜻입니다. 주사위가 굴러 그 눈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저는 삼십 년 동안 사람의 이야기를 가장 가까이에서 듣는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알게 된 것이 하나 있습니다.
같은 일이 여러 번 일어난 사람에게는, 그것이 하필이 아닙니다.
오십 대 초반의 한 가장이 계셨습니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마다 곁에 있던 사람을 밀어내셨습니다. 저 사람이 내 앞길에 걸린다고 여기신 것입니다. 직장에서 한 번, 그다음 자리에서 한 번, 오래 나가시던 모임에서 한 번.
본인은 매번 상대가 문제였다고 하셨습니다.
세 번째 이야기를 들으면서 여쭈었습니다. 그 세 번에 공통으로 있던 사람이 누구입니까.
한참 조용하셨습니다.
세 번은 우연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 사실이 밖에서는 곧바로 보이고 안에서는 좀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자기 인생은 한 번에 한 장면씩만 살기 때문입니다. 밖에서 보는 사람은 세 장면을 겹쳐 놓고 봅니다.
이것이 셋째 단서가 사람에게 어려운 까닭입니다. 미리 말해 보려면 지나온 것을 겹쳐 놓아야 하는데, 우리는 자기 것을 겹쳐 놓지 않습니다.
그러니 한 번 겹쳐 보시면 좋겠습니다.
지금 당신을 힘들게 하는 그 일이 처음입니까.
몇 번째입니까.
자를 다 만들었습니다
세 단서를 다 지나왔습니다.
부분들이 서로 맞물려 있는가. 무엇을 위해 있는가. 무작위와 무엇이 다른가. 셋을 다 대어 보면 무엇이 나옵니까.
답은 나오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말해 둔 것이 있습니다. 세 단서는 답이 아니라 자입니다. 자를 댄다고 답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다만 무엇을 보고 있는지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셋을 다 대고도 남는 물음이 있습니다. 맞물려 있다면 누가 맞물렸는가. 무엇을 위한 것이라면 누가 그 목적을 두었는가. 흩어져 있어야 할 것이 줄지어 있다면 누가 세웠는가.
세 단서는 이 물음에 답하지 않습니다. 이 물음을 정확하게 만들어 줄 뿐입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물음이 흐릿하면 아무 답이나 들어와 앉습니다. 물음이 또렷해지면 아무 답이나 앉지 못합니다.
이제 자가 다 만들어졌습니다. 남은 일은 대어 보는 것입니다.
가장 먼저 갈 곳은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자리입니다. 사람이 만든 것들이 놓인 자리입니다. 거기서 자가 제대로 듣는지를 먼저 확인하고, 그다음에 아무도 그리지 않은 것들로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