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물음, 끝

셋째 물음 끝은 종이의 크기를 먼저 정하는 일입니다. 종이 끝을 보지 않고 첫 글자를 크게 쓰면 마지막 줄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도면도 축척을 먼저 정합니다. 사람이 끝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끝에 대고 그리지 않습니다. 끝을 잘못 잡으면 남은 것이 아니라 축척이 틀립니다. 인생의 여덟 결을 그리는 종이가 이 축척 위에 놓입니다.

종이 끝을 보고 첫 글자를 씁니다

종이 한 장에 이름을 죽 적어야 한다고 해 보겠습니다.

첫 이름을 큼직하게 씁니다. 두 번째도 같은 크기로 씁니다. 그렇게 내려가다 보면 어느 순간 아래가 얼마 안 남은 것이 보입니다. 그때부터 글씨가 작아집니다. 마지막 두셋은 옆으로 밀려나거나 종이 밖으로 나갑니다.

이런 종이를 누구나 한 번쯤 만들어 봤습니다.

여기서 어긋난 것은 글씨 솜씨가 아닙니다. 첫 글자를 쓰기 전에 종이 끝을 보지 않은 것입니다.

몇 사람을 적어야 하는지 세어 보고 종이 길이를 그 수로 나눠 보았다면, 첫 글자의 크기가 그때 정해집니다. 그러면 마지막 이름이 마지막 칸에 들어갑니다. 글씨를 잘 써서가 아니라 끝을 먼저 보아서 그렇습니다.

도면을 그리는 사람은 이 일을 규칙으로 만들어 두었습니다.

무엇을 그리든 제일 먼저 정하는 것이 종이 크기와 축척입니다. 실물 몇 밀리미터를 종이 위 몇 밀리미터로 옮길지를 선 하나 긋기 전에 못 박아 둡니다. 그것을 정하지 않고 그리기 시작하면, 잘 그려 놓고도 마지막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다시 그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여기가 사람에게 그대로 걸리는 자리입니다.

축척이 틀렸을 때 종이가 모자란 것은 마지막에 드러납니다. 그런데 틀린 것은 마지막이 아니라 첫 줄입니다.

아는 것과 대고 그리는 것은 다릅니다

여기서도 곧바로 미끄러지는 자리가 있습니다.

끝 이야기를 꺼내면 대개 두 갈래로 갑니다. 하나는 그러니 오늘을 소중히 여기자는 쪽이고, 다른 하나는 어차피 끝나니 다 부질없다는 쪽입니다.

둘 다 끝을 보고 나서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 자리입니다.

마음만 한 번 움직이고 그리던 대로 계속 그립니다.

정직하게 말하면 그렇게 되는 쪽이 훨씬 많습니다.

사람은 다 죽는다는 것을 모르는 어른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알고 오늘 선을 다르게 긋는 사람은 아주 적습니다.

그러니 끝을 아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아는 것과 대고 그리는 것이 다릅니다.

종이 끝이 저기 있다는 것은 이름을 적던 사람도 알고 있었습니다. 눈에 보였습니다. 다만 첫 글자를 쓸 때 그것에 대어 보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리고 하나를 갈라 두어야 합니다.

끝을 본다는 것은 남은 양을 세는 일이 아닙니다.

몇 해 남았는지를 세는 것은 불안만 키웁니다. 세어 봐야 정확히 알 수도 없습니다. 끝을 본다는 것은 무엇이 그 안에 들어가야 하는지를 정하는 일입니다. 종이의 길이를 재는 것이 아니라, 적어야 할 이름이 몇인지를 먼저 세는 것입니다.

이 둘은 다른 일입니다. 앞엣것은 사람을 얼어붙게 하고, 뒤엣것은 첫 글자의 크기를 정해 줍니다.

사십 년 치 도면은 있었는데

저는 삼십 년 동안 사람의 이야기를 가장 가까이에서 듣는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예순에 정년을 하신 분이 계셨습니다. 한 회사에서 사십 년 가까이 일하셨고, 마지막 몇 해는 자리도 높으셨습니다. 그만두시던 해에는 홀가분하다고 하셨습니다.

삼 년쯤 지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십 년 치 계획은 있었는데 그 뒤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남은 날이 막막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분은 정년을 종이 끝으로 알고 사셨습니다. 거기까지 계획을 세우고 거기에 맞춰 살아오셨습니다. 그런데 정년은 종이 끝이 아니라 종이 한가운데였습니다.

지금 예순인 사람 앞에는 대개 이십 년이 넘게 남아 있습니다. 서른 해가 남는 사람도 드물지 않습니다.

그러니 그분에게 부족했던 것은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축척이었습니다.

사십 년을 종이 전체로 알고 그렸으니 앞이 크게 그려졌습니다. 뒤에 남은 절반이 들어갈 자리가 없습니다. 그 절반은 여백이 아니라 그리지 않은 부분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사십 년 동안 몸에 익힌 것을 밑천 삼아, 인터넷에서 벌 수 있는 길을 알아보고 준비하기 시작하셨습니다.

당신이 지금 그리고 있는 도면의 종이 끝은 어디입니까.

그것을 정해 놓고 그리기 시작하셨습니까, 아니면 지금 그리고 있는 데까지가 종이라고 생각하고 계십니까.

종이 크기를 정한 것은 그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 물음이 못 하는 일이 있습니다.

끝을 먼저 본다고 해서 끝이 늦게 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종이 끝이 정확히 어디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여기가 가장 정직해야 할 대목입니다.

재려는 것을 잴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축척은 정해야 합니다.

모른다고 정하지 않아도 축척은 생깁니다. 지금까지 그린 데까지가 종이라는 축척입니다. 그것이 가장 틀린 축척이고, 정년을 종이 끝으로 알았던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모르는 것과 정하지 않는 것은 다릅니다.

이것으로 세 물음이 끝났습니다.

혼자일 때 자기 결을 보았고, 둘일 때 두 결이 붙는 법을 보았고, 끝에서 축척을 보았습니다. 셋 다 답이 아니라 물음이고, 셋 다 한 번 묻고 끝나지 않습니다. 이 셋을 들고 여덟 결로 들어갑니다. 몸과 배움과 일과 사랑과 부부와 자녀와 돈과 나이 듦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가 남습니다.

종이의 크기를 정한 것은 그 위에 그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종이는 이미 잘려서 옵니다. 우리는 크기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크기를 알아내야 하는 쪽에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여기서 말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그리는 사람이 종이를 자르지 않았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