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물음, 둘이

둘째 물음 둘이는 인생의 여덟 결을 두 사람 사이에 놓고 봅니다. 결이 다른 두 사람이 붙어 있는 자리입니다. 판자 두 장을 결이 엇갈리게 붙여 놓으면 계절이 바뀔 때 갈라집니다. 단단히 붙일수록 크게 갈라집니다. 가까울수록 더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붙어 있어야 다름이 드러납니다. 목수는 결이 다르다고 판자를 버리지 않고 붙이는 법을 바꿉니다.

결을 엇갈리게 붙이면 갈라집니다

판자 두 장을 이어 붙여 작은 상을 하나 짠다고 해 보겠습니다.

나무는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장마철에는 물기를 먹어 부풀고 겨울에는 마르면서 줄어듭니다. 다 짜 놓은 가구도 해마다 그렇게 움직입니다.

그런데 아무 방향으로나 움직이지 않습니다.

결이 뻗은 쪽으로는 거의 그대로입니다. 길이가 천분의 하나둘쯤 달라지는 데 그쳐서 목수들은 아예 없는 셈 칩니다. 움직이는 것은 결을 가로지르는 쪽, 그러니까 폭입니다. 이쪽은 눈에 보일 만큼 움직입니다.

그러니 판자 두 장을 붙일 때 결을 어느 쪽으로 놓느냐가 전부입니다.

두 장의 결을 나란히 놓고 붙이면 둘이 같이 부풀고 같이 줄어듭니다. 계절이 몇 번을 지나가도 아무 일이 없습니다.

결을 엇갈리게 놓고 붙이면 다릅니다. 한 장이 넓어지려는데 다른 한 장은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밀고 버티다가 결국 어느 한쪽이 터집니다.

그리고 여기가 중요합니다.

단단히 붙일수록 크게 갈라집니다.

느슨하게 붙였으면 조금 어긋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못을 촘촘히 박고 아교를 두껍게 발라 놓으면 나무 자체가 쪼개집니다. 힘이 빠져나갈 데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멀리 있는 사람과는 결이 어긋날 일이 없습니다. 붙어 있지 않으니 갈라질 데도 없습니다. 어긋남은 붙어 있는 데서만 드러납니다.

그러니 가까워지면서 두 사람이 더 달라진 것이 아닙니다. 붙어 보아야 비로소 보이는 것입니다.

결이 다른 것과 잘못한 것은 다릅니다

여기서도 곧바로 미끄러지는 자리가 있습니다.

결이 다르다는 말을 손에 쥐면 그다음에 나오는 문장이 대개 정해져 있습니다. 우리는 원래 안 맞는다. 이 말로 닫으면 결은 그 순간 방패가 됩니다.

앞에서는 결이 핑계가 되는 자리를 막았습니다. 여기서는 방패가 되는 자리를 막아야 합니다.

목수는 결이 다르다고 판자를 버리지 않습니다. 붙이는 법을 바꿉니다.

오래된 가구를 뒤집어 보면 그것이 보입니다. 문짝의 넓은 판은 네 귀에 딱 붙어 있지 않고 홈에 얹혀 있습니다. 상판을 다리에 고정하는 나사 구멍은 동그랗지 않고 길쭉합니다. 나사가 그 안에서 움직입니다. 붙여 놓되 움직일 자리를 남긴 것입니다.

백 년을 간 가구는 나무가 안 움직여서 간 것이 아닙니다. 움직일 자리가 있어서 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를 갈라 두어야 합니다.

결이 다른 것과 잘못한 것은 다릅니다.

약속을 어긴 것, 함부로 한 말, 있어야 할 자리에 없었던 것은 결이 아닙니다. 그것을 결이라고 부르는 순간 결이 방패가 되고, 방패가 된 결은 이미 결이 아닙니다.

가르는 법은 하나입니다. 그 사람이 다른 데서도 그렇게 합니까. 결은 어디서나 같은 방향으로 뻗습니다. 나에게만 그렇다면 그것은 결이 아닙니다.

다가가면 물러나고, 물러나니 더 다가갑니다

저는 삼십 년 동안 사람의 이야기를 가장 가까이에서 듣는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제일 많은 것이 가장 가까운 사람 이야기였습니다.

예순 무렵의 한 부부가 계셨습니다. 삼십 년 넘게 사셨는데 다투는 모양이 늘 같았습니다.

한 분은 일이 생기면 말을 해야 풀렸습니다. 그 자리에서 이야기해야 마음이 가라앉습니다. 말로 안 될 일은 없다고 믿으셨습니다. 다른 한 분은 반대였습니다. 혼자 조용히 있어야 정리가 됩니다. 부딪쳤을 때는 시간을 두어야 서로가 이해된다고 믿으셨습니다.

그래서 한 분이 다가가면 다른 분이 물러났습니다. 물러나니 다가간 쪽은 자기를 밀어낸다고 여겼고, 그래서 더 다가갔습니다. 더 다가가니 더 물러났습니다.

삼십 년 동안 같은 데서 같은 일이 되풀이되었습니다.

두 분 다 상대가 자기를 아끼지 않는다고 믿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두 분이 하고 있던 일은 같았습니다. 각자 자기가 풀리는 방식으로 그 순간을 살려 보려던 것입니다.

그것을 아시는 데 삼십 년이 걸렸습니다.

알고 나서도 여전히 한 분은 말하고 싶고 한 분은 혼자 있고 싶습니다. 그것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바뀐 것은 하나입니다. 물러나는 것을 밀어내는 것으로 읽지 않게 되었습니다.

당신이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서 가장 이해가 안 되는 점을 하나 떠올려 보십시오.

그것은 그 사람이 당신을 함부로 대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그 사람의 결이 당신과 반대로 뻗은 것입니까.

두 판자는 끝까지 두 판자입니다

이 물음이 못 하는 일이 있습니다.

결을 알아도 둘이 하나가 되지는 않습니다. 두 판자를 아무리 잘 붙여도 두 판자입니다. 하나였던 적이 없고 앞으로도 없습니다. 그것을 목표로 삼으면 붙이는 일이 부수는 일이 됩니다.

그리고 안다고 해서 덜 부딪히지도 않습니다.

목수가 안다고 해서 나무가 가만히 있어 주지는 않습니다. 해마다 부풀고 해마다 줄어듭니다. 아는 목수가 하는 일은 나무를 멈추는 것이 아니라 갈라지지 않게 짜는 것뿐입니다.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나무는 한 번 맞춰 놓으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계절마다 다시 움직입니다. 스무 해 전에 맞춰 둔 곳이 지금도 맞는 곳은 아닙니다.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서 나가고, 몸이 달라지고, 일이 바뀝니다. 그때마다 두 결이 닿는 면이 달라집니다.

그러니 이 물음은 한 번 묻고 끝나지 않습니다.

목수가 가구를 짤 때 보는 것은 오늘 딱 맞는 모양이 아닙니다. 계절이 스무 번 지나간 뒤에도 갈라지지 않을 모양입니다.

끝을 어디로 보느냐가 오늘 짜는 법을 정합니다.

다음은 거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