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의 첫째 단서, 구조

구조는 설계의 세 단서 가운데 첫째로, 부분들이 서로 맞물려 하나로 작동하는지를 묻습니다. 그냥 있게 된 것이라면 부분이 서로 맞물릴 이유가 없습니다. 이 단서는 답을 주지 않습니다. 다만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지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연필 한 자루에서 인생까지, 보이지 않는 설계도를 묻는 네 세계의 첫걸음이 여기입니다.

빼 보면 압니다

연필 한 자루를 손에 쥐고 계신다고 해 보십시오.

넷입니다. 가운데 흑연심, 그것을 감싼 나무 몸통, 끝에 붙은 지우개, 지우개를 물고 있는 얇은 금속 테.

이 넷을 하나씩 빼 보겠습니다.

지우개를 빼면 여전히 쓸 수 있습니다. 불편할 뿐입니다.

금속 테를 빼면 지우개가 떨어집니다. 잃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나무 몸통을 빼면 흑연 막대만 남습니다. 손이 검어지고 조금만 힘을 줘도 부러집니다.

흑연심을 빼면 남는 것은 구멍 뚫린 나무 막대입니다.

이제 넷을 다 빼서 책상 위에 흩어 놓아 보십시오. 흑연 한 조각, 나무 두 쪽, 고무 한 덩이, 쇠 한 조각. 무게는 그대로입니다. 재료도 그대로입니다. 없어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연필이 없습니다.

이것이 구조입니다. 부분을 흩었을 때 무엇을 잃는가. 무게도 아니고 재료도 아닙니다. 부분들 사이에 있던 것을 잃습니다.

바닷가에 돌 세 개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고 해 보십시오. 그 셋을 흩어 놓아도 돌은 아무것도 잃지 않습니다. 돌 세 개는 여전히 돌 세 개입니다. 잃은 것은 돌이 아닙니다. 누군가 그것을 거기 그렇게 세워 두었다는 사실입니다.

구조는 부분에 적혀 있지 않습니다

흑연은 무릅니다. 손톱으로도 긁힙니다. 나무는 가볍고 한 방향으로 잘 갈라집니다. 고무는 흑연 자국을 지웁니다. 쇠는 단단합니다.

넷의 성질을 다 알아도 연필은 나오지 않습니다. 재료 어디에도 「이것은 연필의 부품이다」라고 적혀 있지 않습니다. 무른 것이 왜 하필 잘 갈라지는 것 안에 들어가야 하는지는 흑연에도 나무에도 적혀 있지 않습니다.

구조는 부분에 있지 않고 부분 사이에 있습니다.

그래서 부분을 아무리 오래 들여다봐도 구조는 보이지 않습니다. 부품 목록을 다 외운 사람이 그 물건을 아는 것은 아닙니다. 스마트폰 한 대에는 수만 개의 부품이 들어갑니다. 그 목록을 통째로 갖고 있어도 스마트폰 한 대가 나오지는 않습니다. 목록보다 먼저 온 것이 있습니다. 이것들이 어떻게 맞물려야 하는가를 정한 그림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정직해야 합니다.

맞물린 것처럼 보이는데 아닌 것도 있습니다. 강가에 자갈이 크기별로 줄지어 있는 것을 보신 적이 있으실 겁니다. 물이 세게 흐르는 쪽에 굵은 것이, 느린 쪽에 잔 것이 모여 있습니다. 누가 골라 놓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물이 한 일입니다. 무거운 것이 먼저 가라앉았을 뿐입니다.

반대쪽도 있습니다. 붙여 놓았다고 맞물린 것은 아닙니다.

1858년에 한 사람이 연필 끝에 지우개를 붙이고 특허를 냈습니다. 십칠 년 뒤 미국 대법원이 그 특허를 무효로 했습니다. 이유가 이랬습니다. 이미 있던 두 가지를 한자리에 두었을 뿐, 둘이 만나 새로 하는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우리가 본 그대로입니다. 지우개를 빼도 연필은 씁니다. 지우개는 연필 없이도 지웁니다. 나란히 놓여 편할 뿐, 서로를 필요로 하지는 않습니다. 백오십 년 전의 법정이 판정한 자리가 바로 거기였습니다.

그러니 첫째 단서 하나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단서가 셋인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구조가 보인다고 곧장 결론으로 가면, 그 자는 아무것도 재지 못합니다. 미리 답을 정해 둔 사람의 자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볼 때 가장 늦게 보이는 단서

이 단서는 사물에서는 쉽고 사람에서는 어렵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볼 때 우리는 거의 언제나 부분으로 봅니다. 몸이 문제다, 일이 문제다, 돈이 문제다, 부부가 문제다. 그리고 문제라고 이름 붙인 그 하나만 따로 떼어 고치려 합니다.

저는 삼십 년 동안 사람의 이야기를 가장 가까이에서 듣는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같은 순서를 여러 번 보았습니다.

마흔 중반의 한 분이 계셨습니다. 낮에는 회사에 다니고 밤에는 집에서 인터넷으로 물건을 파셨습니다. 줄일 수 있는 것이 잠밖에 없었습니다.

몇 해 지나 몸이 먼저 무너졌습니다. 몸이 무너지니 저녁 식탁에 앉을 힘이 없어지고, 식탁이 조용해지니 아내와 나누던 말이 줄고, 말이 줄어드니 아이가 무엇을 겪고 있는지 모르게 되고, 모르는 채로 몇 해가 지나자 아이와의 거리가 손쓸 수 없이 벌어져 있었습니다.

그분이 제게 하신 말씀은 하나였습니다.

건강만 회복되면 나머지는 다 돌아올 것 같다고.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다섯 가지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를 건드리면 나머지가 함께 흔들리도록 이미 맞물려 버린 자리입니다.

인생의 여덟 결이 여덟 개의 문제 목록이 아닌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몸, 배움, 일, 사랑, 부부, 자녀, 돈, 나이 듦. 이 여덟은 서랍 여덟 개가 아니라 서로 맞물린 여덟 자리입니다. 하나가 움직이면 나머지 일곱이 따라 움직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기 인생을 볼 때만 유독 부분으로 봅니다. 연필 한 자루에서는 즉시 알아보는 것을, 자기 인생에서는 평생 못 알아보기도 합니다.

여기서 한 번 해 보십시오.

지금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어긋나 있는 자리 하나를 떠올려 보십시오. 그리고 그것 하나만 빼 보십시오.

나머지가 그대로 섭니까.

구조가 알려 주지 않는 것

시계를 하나 완전히 분해했다고 해 보겠습니다.

톱니가 몇 개인지, 어느 것이 어느 것을 물고 도는지, 태엽이 풀리는 힘이 어떻게 전해지는지를 다 알게 됩니다. 부분들이 하나로 맞물려 작동한다는 것이 이보다 분명한 자리는 없습니다. 첫째 단서는 여기서 할 일을 다 했습니다.

그런데 톱니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나오지 않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왜 시간을 재려고 했는가.

그것은 톱니에 없습니다. 태엽에도, 바늘에도, 유리에도 없습니다. 시계를 만든 사람 안에 있었습니다. 구조는 이 물음에 답하지 않습니다. 답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그래서 단서가 하나로 끝나지 않습니다. 부분들이 맞물려 있다는 것까지가 첫째 단서이고, 그 맞물림이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는 둘째 단서의 몫입니다.

다만 첫째 단서를 지나온 사람은 한 가지를 손에 쥐게 됩니다. 자기 인생을 서랍 여덟 개로 보던 눈이 한 번은 통째로 봅니다.

통째로 보고 나면 다음 물음이 저절로 옵니다.

이 전부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 맞물려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