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만규: 예순여섯에 자기 몸을 처음 읽은 사람

복만규는 『보이지 않는 설계도』와 『내 맹장은 왼쪽에 있었다』를 썼고, 복만규 설계도의 다섯 무대를 운영합니다. 기계공학을 공부하며 제도판 앞에서 선을 그었고, 그 뒤 삼십 년을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는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순여섯에야 자기 몸의 결을 읽었습니다.

예순여섯에야 알았습니다

제 맹장은 왼쪽에 있습니다.

수술대 위에서 처음 들었습니다. 맹장만이 아니었습니다. 장기 여럿이 보통 사람과 반대쪽에 놓여 있었습니다.

예순여섯 해 동안 저는 제 몸을 고장 난 표준품으로 알고 살았습니다. 남들과 똑같이 생겼어야 할 몸이 어디선가 잘못 만들어졌고, 그래서 자꾸 탈이 난다고요. 더 관리하면 남들처럼 될 줄 알았습니다.

그날 이후로 몸이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몸은 그대로입니다. 달라진 것은 자책이었습니다.

왜 도면을 그리던 사람이 사람을 읽게 되었는가

제도판에서 배운 것이 하나 있습니다.

부품이 안 맞을 때 손은 두 갈래로 갑니다. 깎아서 맞추는 손과, 도면을 다시 펴 보는 손입니다. 서툰 사람은 깎습니다. 당장은 들어가는데 전체가 조금씩 어긋납니다. 오래 한 사람은 도면을 먼저 봅니다.

사람도 그랬습니다.

삼십 년 동안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는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 저는 사람들이 서로를 깎으려 애쓰는 것을 보았습니다. 배우자를 깎고, 자녀를 깎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깎았습니다.

깎아서 될 일이 아니었습니다. 읽어야 할 일이었습니다.

왜 이 두 권인가

두 권은 방향이 반대입니다.

『보이지 않는 설계도』는 밖에서 안으로 들어옵니다. 연필 한 자루에서 시작해 자연과 우주와 역사를 지나, 마지막에 당신 자신에게 도착합니다.

『내 맹장은 왼쪽에 있었다』는 안에서 시작합니다. 몸과 배움과 일과 사랑에서 시작해 자기 결로 들어갑니다.

밖에서 오든 안에서 오든 같은 자리에서 만납니다. 먼저 그어진 선이 있는가 하는 물음입니다.

왜 이 주제에 신뢰할 수 있는가

자격증으로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세 가지입니다.

하나. 삼십 년 동안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남에게는 하지 않는 말을 하는 자리에 오래 앉아 있었습니다. 그 삼십 년이 제 자료입니다. 통계가 아니라 얼굴로 된 자료입니다.

둘. 선을 긋기 전에 전체를 먼저 봅니다. 선 하나를 긋기 전에 늘 전체를 먼저 봅니다. 이 부분이 저 부분과 어디서 만나는지를 모르면 한 줄도 그을 수 없습니다. 그 눈이 사람 앞에서도 그대로 작동했습니다. 이 사람이 왜 여기서 늘 걸리는가는, 이 부품이 왜 여기서 늘 걸리는가와 같은 물음입니다.

셋. 제가 가장 늦게 알았습니다. 예순여섯까지 제 몸의 결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이 일을 가르친다고 하지 않습니다. 먼저 돌아온 사람이 길을 알려 드린다고 말합니다. 자기 결을 읽는 데 예순여섯 해가 걸린 사람이 하는 말이니, 늦었다는 말은 웬만해서 하지 않습니다.

자주 묻는 것

삼십 년 동안 앉아 있던 자리가 어디인가요?

한 교회에서 목회했습니다. 이 사이트는 신앙을 권하는 자리가 아니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다만 제가 어디에서 사람을 보았는지를 감추지는 않겠습니다.

코칭은 상담인가요?

아닙니다. 상담은 아픈 자리를 다룹니다. 여기서 하는 일은 자기 결을 읽고 다음 선을 그리는 일입니다. 지금 마음이 많이 힘드시다면 먼저 전문가를 만나시는 편이 낫습니다.

결을 읽으면 문제가 풀리나요?

읽는 것과 그리는 것은 다릅니다. 결을 읽으면 왜 여기까지 왔는지가 보입니다. 그다음 선을 그리는 일은 또 다른 작업이고, 시간이 걸립니다. 읽는 것만으로 다 되는 것처럼 말하지 않겠습니다.

왜 이 나이에 이 일을 시작했나요?

늦게 알았기 때문입니다. 더 일찍 알았다면 다른 일을 했을 겁니다. 먼 길을 돌아온 사람만 할 수 있는 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 읽기

두 권 → 『보이지 않는 설계도』 / 『내 맹장은 왼쪽에 있었다』 – 두 개의 읽기 틀 → 설계의 세 단서와 네 세계 / 인생의 여덟 결 – 다섯 무대 → 건강설계 / 부부설계 / 자녀양육설계 / 은퇴설계 / 인생설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