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째 세계, 당신 자신의 인생
보이지 않는 설계도를 물으며 걸어온 네 세계의 마지막은 자기 자신입니다. 앞의 세 세계에서는 물러서서 볼 수 있었는데 여기서는 물러설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자기에 대해 알고 있는 것 가운데 많은 것이 자기를 본 것이 아니라 표준에서 왔습니다. 세 단서가 여기서 새것을 알려 주지는 않습니다. 다만 아는 것이 어디서 왔는지를 갈라 줍니다.
여기서는 물러설 수가 없습니다
세 세계를 지나왔습니다.
첫째 세계에서는 연필을 들고 시작했습니다. 만든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의 뜻이 물건에 남아 있었습니다. 둘째 세계에서는 잎맥에 같은 자를 대었습니다. 만든 사람이 없었고 설명이 둘이었습니다. 셋째 세계에서는 잔디밭에 저절로 난 길을 보았습니다. 만든 사람이 아주 많은데 아무도 그것을 만들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넷째 세계입니다. 당신 자신의 인생입니다.
여기서 세 가지가 한꺼번에 달라집니다.
하나. 물러설 수가 없습니다. 잔디밭의 길은 이층 창에서 내려다보면 보였습니다. 자기 인생에는 이층 창이 없습니다. 자를 쥔 사람과 자를 대는 곳이 같습니다.
둘. 자료가 하나뿐입니다. 잎은 백 장을 뜯어도 규칙이 같았습니다. 인생은 한 번뿐이고, 다른 사람의 인생은 밖에서 본 것이라 견줄 자료가 되지 못합니다.
셋. 이것이 가장 큽니다. 자기에 대해 알고 있는 것 가운데 많은 것이 자기를 본 것이 아닙니다. 어디선가 배운 것입니다.
세 단서를 대어 보겠습니다.
부분들이 맞물려 있습니까. 하나를 빼 보면 압니다. 그런데 자기 인생에서 무엇 하나를 빼 볼 방법이 없습니다.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이것은 물을 수 있습니다. 다만 대답이 어디서 오는지를 봐야 합니다.
무작위와 무엇이 다릅니까. 이것도 물을 수 있습니다. 다만 되풀이가 없으니 견줄 것이 없습니다.
셋 다 물음은 서는데 대답이 잘 나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대답이 나올 때가 더 조심스럽습니다. 그 대답이 자기를 본 데서 나온 것인지, 배운 데서 나온 것인지를 갈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재는 것과 매기는 것은 다릅니다
여기서 곧바로 미끄러지는 자리가 있습니다.
자를 자기에게 돌리면 사람은 재지 않고 매깁니다. 내 인생은 잘 산 것인가 못 산 것인가. 그 물음이 나오는 순간 자가 저울로 바뀝니다.
세 단서는 그런 것을 묻지 않습니다.
첫째 세계에서 연필을 잴 때 이 연필이 잘 살았는지를 묻지 않았습니다. 부분들이 맞물려 있는지, 무엇을 위한 것인지, 무작위와 다른지를 물었을 뿐입니다.
있느냐 없느냐를 묻는 자이지, 잘했느냐 못했느냐를 묻는 자가 아닙니다.
그리고 여기가 이 세계에서 가장 정직해야 할 대목입니다.
셋째 세계에서 뒤늦게 그은 선을 경계했습니다. 지나간 일에는 무슨 선을 그어도 그것이 틀렸다고 할 두 번째 자료가 없다고 했습니다.
자기 인생이 그런 자료 가운데서도 가장 심합니다.
사람은 자기 인생에 대해 하루에도 몇 번씩 선을 긋습니다. 기분이 좋으면 다 뜻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나쁘면 다 헛된 것으로 보입니다. 같은 인생을 놓고 아침과 저녁의 선이 다릅니다.
그러니 이 세계에서 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주 작습니다.
작지만 하나 있습니다.
자기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어디서 왔는지를 가르는 일입니다.
예순여섯에 알게 된 것
저에게 그 일이 온 것은 예순여섯이었습니다.
배가 아팠습니다. 병원에 갔고, 검사를 했고, 맹장이 왼쪽에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드문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저를 붙든 것은 드물다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예순여섯 해였습니다.
예순여섯 해 동안 저는 제 맹장이 오른쪽에 있는 줄 알고 살았습니다.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날 알았습니다.
저는 제 몸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배운 것을 제 몸으로 알고 있었을 뿐입니다.
여기서 아무도 저를 속이지 않았습니다. 맹장은 대개 오른쪽에 있습니다. 배운 것이 틀린 것도 아닙니다.
다만 저에게는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에는 더 조용한 대목이 있습니다. 맹장이 왼쪽에 있다고 해서 아픔이 늘 왼쪽에서 오는 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장기가 옮겨져도 느낌은 배운 데로 옵니다.
예순여섯 해 동안 아무 일이 없었던 것이 그래서입니다. 물어볼 일이 없었습니다.
이런 일이 몸에만 있겠습니까.
당신이 자신에 대해 알고 있는 것 가운데, 스스로 보고 아신 것은 몇이나 됩니까.
나머지는 어디서 왔습니까.
당신은 이 셋 가운데 어느 쪽입니까
넷째 세계에서 자가 마지막 시험을 지났습니다. 넷 가운데 여기가 가장 나쁩니다.
물러설 수 없고, 되풀이가 없고, 자료마저 남에게서 왔습니다. 그러니 당신의 인생 전체에 세 단서가 서는지는 이 자로 끝내 알 수 없습니다. 이것을 감추면 지금까지 온 길이 한 문단에 무너집니다.
그런데 자가 여기서 하나를 갈랐습니다.
당신이 자신에 대해 알고 있는 것 가운데 어느 것이 당신을 본 데서 왔고 어느 것이 표준에서 왔는지를 나눌 수 있습니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자를 만든 값은 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자를 내려놓습니다.
인생을 한 덩어리로 놓으면 아무것도 잴 수 없습니다. 너무 크고 한 번뿐이고 안에서 보아야 합니다. 나눠야 합니다. 몸과 배움과 일과 사랑과 부부와 자녀와 돈과 나이 듦, 여덟으로 나눠 봅니다.
거기서는 자를 대지 않습니다. 결을 봅니다. 재는 것이 아니라 따라가는 것입니다.
네 세계가 끝났습니다.
첫째 세계의 연필에는 만든 사람이 있었습니다. 둘째 세계의 잎맥에는 설명이 둘이었습니다. 셋째 세계의 잔디밭 길은 아무도 설계하지 않았는데 방향이 생겼습니다.
당신은 이 셋 가운데 어느 쪽입니까.
여기서 답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이 물음을 한 번도 받아 본 적이 없다면, 그동안 어느 쪽이라고 여기고 사셨는지는 한번 보실 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