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세계, 자연과 우주
둘째 세계 자연과 우주는 아무도 그리지 않은 것들에 같은 자를 대어 보는 자리입니다. 잎맥 한 장에서도 설계의 세 단서가 다 섭니다. 그런데 첫째 세계에 없던 것이 여기에 하나 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밝히는 설명이 이미 서 있다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설계도를 재는 자를 바꾸지 않는 것이 이 세계의 규율입니다.
잎맥 한 장에서 셋이 다 섭니다
잎을 하나 들어 빛에 비춰 보십시오.
굵은 맥이 가운데를 지나고, 거기서 가는 맥이 뻗어 나오고, 그 끝에서 더 가는 맥이 다시 갈라집니다. 잎의 어느 한 점을 찍어도 물길이 거기까지 닿아 있습니다.
세 단서를 대어 보겠습니다.
부분들이 맞물려 있습니까. 굵은 맥 하나를 끊으면 그 아래가 통째로 마릅니다. 서로를 필요로 합니다.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물과 양분을 나르는 일입니다. 이것도 분명합니다.
무작위와 무엇이 다릅니까. 갈라지는 각도와 간격에 규칙이 있고, 다른 잎을 뜯어 보아도 같습니다.
셋이 다 섭니다. 첫째 세계의 연필에서와 똑같이 울립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연필에는 왜 그렇게 생겼느냐는 물음에 답이 하나뿐이었습니다. 누가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잎맥에는 답이 둘입니다. 그렇게 만들어졌거나, 그렇게 된 것이 남았거나.
둘째 세계가 첫째와 다른 자리가 여기입니다. 답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답이 둘인 것입니다.
눈송이는 셋 가운데 하나만 섭니다
여기서 두 가지 유혹이 함께 옵니다.
하나는 자가 울렸으니 그것으로 결론을 내려는 마음입니다. 다른 하나는 설명이 이미 있으니 자를 치워 버리려는 마음입니다. 둘 다 자를 바꾸는 일입니다.
자가 하는 일은 정해져 있습니다. 세 단서가 서 있는지 재는 것입니다. 잎맥에서 셋이 다 선다는 것은 사실이고, 설명이 몇 개든 그것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다만 셋이 다 선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자가 답하지 않습니다. 셋째 단서에서 이미 말해 두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정직해야 합니다.
자연에는 셋이 다 서지 않는 것이 훨씬 많습니다.
눈송이를 보십시오. 여섯 갈래로 갈라진 모양이 사람 눈에는 정교합니다. 같은 것이 둘도 없다고 합니다. 아무도 그리지 않았습니다.
세 단서를 대어 보겠습니다.
질서가 있습니까. 있습니다. 언제나 여섯 갈래입니다. 물 분자가 붙는 각도가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아무것도 위하지 않습니다. 눈송이가 여섯 갈래인 것은 무엇을 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어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셋 가운데 하나만 섰습니다.
소금 알갱이도 그렇습니다. 네모반듯하게 자라지만 그 모양이 무엇을 하지는 않습니다. 자연에는 이런 것이 수없이 많습니다. 규칙에서 저절로 나오는 모양입니다.
그러니 자가 여기서도 무언가를 갈랐습니다. 아무도 그리지 않은 것들 안에서, 셋이 다 서는 것과 하나만 서는 것을 나눴습니다. 자연 전체를 한 덩어리로 놓고 정교하다고 말하는 것은 재는 것이 아닙니다.
나무 앞에서 한참 서 계셨다는 말
사물에서는 이렇게 잽니다. 사람에게는 어떻게 옵니까.
저는 삼십 년 동안 사람의 이야기를 가장 가까이에서 듣는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여러 번 들은 말이 하나 있습니다.
자연 앞에서 말을 잃고 한참 서 계셨다는 이야기입니다.
큰 병으로 수술을 하고 몇 달 만에 처음 바깥에 나가신 분이 계셨습니다. 집 앞 나무 앞에서 걸음이 멈췄다고 하셨습니다. 이십여 년 동안 그 길을 다니셨고 그 나무를 매일 보셨습니다. 그날은 한참을 서 계셨다고 합니다.
무엇을 보셨느냐고 여쭈니 대답을 못 하셨습니다. 그냥 나무였다고 하셨습니다.
그날 나무가 달라진 것은 아닙니다. 잎맥이 갈라지는 각도도, 물이 오르는 길도 이십여 년 동안 같았습니다. 달라진 것은 보는 사람 쪽이었습니다.
여기서 조심할 것이 있습니다. 그 순간을 느낌으로만 두면 아무것도 남지 않고, 그 순간을 곧바로 결론으로 밀면 그것은 재는 것이 아닙니다. 멈춰 선 것은 시작이지 답이 아닙니다.
다만 멈춰 서 본 사람은 한 가지를 압니다. 이십여 년을 보면서도 보지 못한 무언가가 거기 있었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자연 앞에서 걸음을 멈췄던 그때,
그날 달라진 것은 그것이었습니까, 당신이었습니까.
여기서는 답이 둘입니다
둘째 세계에서 자가 두 번째 시험을 지났습니다.
첫째 세계에서는 답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여기서는 답이 둘입니다. 그리고 자는 둘 중 하나를 고르지 않았습니다. 자가 한 일은 잎맥과 눈송이를 나눈 것뿐입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아무도 그리지 않은 것들 안에서도 세 단서가 실제로 무언가를 가른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계기가 이 자리에서도 눈금을 지켰습니다.
그러니 이 세계에서 결론을 가지고 나가지 않습니다.
잎맥에서 셋이 다 선다는 사실 위에 무엇을 세우려면 그 사실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설명이 둘이고, 둘 다 그 사실과 어긋나지 않습니다. 어느 쪽을 고를지는 자가 정하는 일이 아닙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는 글이 세상에 많고, 그런 글은 읽는 사람을 첫 문단에서 잃습니다.
이제 셋째 세계로 갑니다.
거기는 사람이 만든 것도 아니고 자연도 아닌 자리입니다. 앞에서 오솔길과 말을 짚어 두었습니다. 여러 사람이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었는데 아무도 설계하지 않은 것들입니다. 그 두 가지가 크게 펼쳐진 자리가 역사입니다.
거기서는 또 다른 것이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