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세계, 역사
셋째 세계 역사는 아무도 설계하지 않았는데 방향이 생긴 것들에 설계의 세 단서를 대어 보는 자리입니다. 여러 사람이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었으나 누구도 그리지 않은 선입니다. 다만 여기서는 그 선이 지나간 뒤에야 보이고, 사람은 없던 선도 뒤늦게 그려 넣습니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설계도를 이 세계에서 찾을 때 규율은 하나입니다. 같은 조건에서 또 나는 선만 선으로 셉니다.
잔디밭에 난 길은 아무도 그리지 않았습니다
공원이나 학교 잔디밭을 지나다 보면 풀이 죽고 흙이 드러난 길이 하나씩 나 있습니다.
포장된 길은 따로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리로 돌지 않고 잔디를 가로질렀고, 몇 달이 지나자 거기가 길이 되었습니다. 아무도 그것을 설계하지 않았습니다. 누가 모여 정한 적도 없고, 먼저 간 사람이 뒤에 오는 사람에게 이리로 오라고 말한 적도 없습니다.
그 위에 서 있으면 그냥 흙바닥입니다. 선이 보이지 않습니다.
건물 이층 창에서 내려다보면 그제야 선이 보입니다.
세 단서를 대어 보겠습니다.
무작위와 무엇이 다릅니까. 다릅니다. 다른 잔디밭에 가도 같은 자리에 납니다. 모퉁이를 안쪽으로 자르는 곳이고, 두 포장길이 만나는 데입니다. 되풀이됩니다.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여기서 걸음이 멈춥니다. 결과만 보면 분명합니다. 가장 짧은 길입니다. 그런데 그 길을 낸 사람들 가운데 길을 내려던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각자 몇 초를 아끼려고 걸었을 뿐입니다.
셋째 세계가 앞의 둘과 다른 자리가 여기입니다.
첫째 세계에는 만든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의 뜻이 물건에 남아 있었습니다. 둘째 세계에는 만든 사람이 없었고 설명이 둘이었습니다. 여기서는 만든 사람이 아주 많은데, 그 많은 사람 가운데 아무도 그것을 만들려 하지 않았습니다.
말도 그렇습니다. 누가 정해 준 것이 아닌데 규칙이 있고, 그 규칙은 백 년에 걸쳐 조금씩 움직이는데 움직이는 방향에도 결이 있습니다. 긴 것이 짧아지고, 자주 쓰는 것이 먼저 닳습니다.
그리고 이것들에는 같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안에 서 있는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나간 뒤에 그은 선은 언제나 맞습니다
여기서 자가 가장 크게 흔들립니다.
사람은 지나간 일에 선을 긋는 데 아주 능합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나면 왜 그렇게 되었는지가 며칠 안에 다 나옵니다. 값이 오르면 오른 까닭이 있고 내리면 내린 까닭이 있습니다. 그 설명들은 대개 그럴듯합니다. 그리고 대개, 그 일이 벌어지기 전에는 아무도 하지 않던 말입니다.
이것이 이 세계의 반례입니다. 앞의 두 세계에는 이런 것이 없었습니다.
연필은 백 번을 보아도 같은 연필이고 잎은 백 장을 뜯어도 규칙이 같습니다. 그런데 지나간 일은 한 번뿐입니다. 두 번 돌려 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선을 그어도 그것이 틀렸다고 할 두 번째 자료가 없습니다.
그러니 여기서는 자에 눈금 하나를 더 붙여야 합니다.
그 선이 미리 그어졌습니까, 뒤에 그어졌습니까.
잔디밭의 길이 선인 까닭은 다른 잔디밭에서도 같은 곳에 나기 때문입니다. 가서 보기 전에 어디에 날지 말할 수 있습니다. 되풀이되는 것입니다.
되풀이되지 않는 선은 선이 아니라 이야기입니다.
이야기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이야기 없이 살지 못합니다. 다만 이야기를 자로 쓰면 무엇이든 잴 수 있고, 무엇이든 잴 수 있는 자는 아무것도 재지 못합니다.
첫째 단서에서 부분 하나를 빼 보라고 한 것이 여기서 다시 옵니다. 빼 볼 수 없는 것은 잴 수 없습니다. 지나간 일에서 부분 하나를 빼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래서 이 세계에서 자가 잴 수 있는 것은 앞의 둘보다 훨씬 적습니다. 그것을 인정하고 들어가는 것이 여기의 규율입니다.
십몇 년이 걸린 한 문장
잔디밭에서는 이렇게 잽니다. 사람의 삶에서는 어떻게 옵니까.
저는 삼십 년 동안 사람의 이야기를 가장 가까이에서 듣는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가장 많이 들은 문장이 하나 있습니다.
예순 중반의 한 분이 계셨습니다. 마흔 중반에 이십몇 년 붙들고 있던 일이 하루아침에 무너졌습니다. 가까운 사람의 부탁으로 보증을 선 것이 그 시작이었습니다. 밖에서 온 것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온 것이었습니다.
처음 몇 해는 그 이야기를 아예 꺼내지 못하셨습니다. 십몇 년이 지나서야 이 말이 나왔습니다.
그때 그 일이 없었으면 지금 여기 없었을 것이라고.
그 무렵 아내가 하신 말은 아직 그대로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늦게 출발한 셈 치고 여기서부터 하자고.
그런데 이어서 하신 말이 더 오래 남았습니다.
그렇다고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고.
뒤늦게 긋는 선은 대개 편안합니다. 아프던 것을 좋았던 것으로 바꿔 놓습니다. 다 뜻이 있었다는 데로 옮겨 놓고 그 시절을 실제보다 곱게 만듭니다. 그런데 그분이 그은 선은 아픈 것을 아픈 채로 두었습니다. 무너진 것은 무너진 것이고, 그 위에 다른 것이 섰다는 말이었습니다.
시간이 걸렸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일이 벌어지던 해에는 누구도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은 그때 길 위에 서 있었고, 길 위에서는 흙바닥만 보입니다. 이층 창은 십몇 년 뒤에 열립니다.
당신이 지금 지나고 있는 이 자리도 안에서 보면 흙바닥일 뿐입니다.
십 년 뒤에 이층에서 내려다본다면, 거기 선이 있겠습니까.
여기서는 자가 가장 약합니다
셋째 세계에서 자가 세 번째 시험을 지났습니다. 앞의 두 번보다 성적이 나쁩니다.
첫째 세계에서는 답을 이미 알고 있었고, 둘째 세계에서는 답이 둘이었습니다. 여기서는 되풀이가 적어서 답을 물을 자리 자체가 잘 서지 않습니다. 이것을 감추면 재는 일이 아니라 편드는 일이 됩니다.
그래서 이 세계에서는 결론을 하나도 가지고 나가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는 남습니다. 아무도 설계하지 않았는데 방향이 생긴 것이 실제로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안에 서 있는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고 물러선 사람에게만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는 잔디밭 하나로도 확인됩니다.
이제 넷째 세계로 갑니다.
마지막 세계이고, 앞의 셋과 다른 것이 하나 있습니다. 지금까지 잰 것은 다 바깥에 있었습니다. 연필도 잎도 잔디밭의 길도 물러서서 볼 수 있었습니다.
넷째 세계에서는 물러설 수가 없습니다. 자를 쥔 사람과 자를 대는 곳이 같기 때문입니다.